짝!
나에게는 조금 특이한 버릇이 있다.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무언가를 해야 할 때, 박수를 짝! 한번 치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. 특히 설거지 하기 전, 청소하기 전에 박수를 한 번 짝! 쳐주면 왠지 당장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.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루틴이 되었다. 박수를 치고 시작하는 일이 점점 이전보다 많아지는 것 같다.
요즘처럼 영 기운도 없고 뭔가를 할 마음도 들지 않을 때, 그저 침대에 딱 붙어서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. 머릿 속으로는 생산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. 오늘도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가벼운 소설을 하나 읽었다. 소설은 재미있었지만, 소설을 읽다 보니 내가 끄적이는 문장들은 영 초라해 보여 울적한 기분이 되었다. 내가 뱉어내는 문장들은 '쓴다'는 단어와 함께 쓰일 자격도 없다. 울적한 기분이 드니 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.
하지만 식사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에 더 이상 늘어져 있을 수는 없었다. 배달 앱을 통해 식사를 주문하든 직접 해서 먹든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한다. 오늘 내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무기력한 기분이 이겼기 때문에 배달 앱을 켜고 무엇이 있나 살펴본다. 흠, 이건 너무 매울 것 같고, 이건 시켜먹기에는 조금 아까운 기분이다. 이건 건강에 너무 해로울 것 같다.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먹고 싶은 것이 없다. 이럴 때는 냉동실 속 밀키트가 제격이지. 그러나 밀키트와 각종 간편 식품으로 가득 차 있는 냉동고를 뒤질 힘도 나질 않는다. 이럴 때 마법의 박수를 한 번 짜! 쳐본다. 몸뚱이가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.
음식들과 아이스크림이 엉켜 있는 냉동고를 살펴본다. 왜 냉장고 회사는 늘 냉장실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일까?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 큰 냉동실이 필요하다. 냉동실의 일부 공간도 냉동실로 사용하면 좋을텐데... 미로같은 냉동실을 뒤지다 오늘 아침에 배송 온 '맨하탄 갈비찜'이 눈에 띈다. 맨하탄과 갈비찜이라니, 뉴욕 바닷가재가 생각나는 이름이다. 같이 쓰일 일이 없을 것 같은 두 단어이지만, 맛은 꽤나 좋다. 절친한 친구인 쏘네서 먹어보고 이후로 계속 생각이 나 레시피를 묻다가 알게 된 제품이다.
겨우겨우 저녁을 차려먹고 나니 설거지 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. 아 귀찮아라, 그렇지만 오늘도 박수의 힘으로 얼렁 뚱땅 잘 먹고 잘 살아냈다.